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
Exhibition Details
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
Oct 14 - Nov 13,2022
아쉬LAB High (서울특별시 용산구 대사관로6가길 28-12)
13:00 - 18:00 월, 화 휴관
Artists
김남훈, 황아일
글·디자인
땡땡콜렉티브
[별 하나가 떨어지고, 온 동네가 빛났다.]
한남동 재개발 지구의 골목길에는 항상 쓰레기가 쌓여 있다. 쓰레기는 좁디좁은 골목에도 사람이 생활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생활의 흔적은 악취를 풍기는 눈엣가시로 변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도 쉽게 손대지 못하도록 썩어간다. 쓰레기를 거둬 가는 환경미화원조차 가져가지 않는 이들.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이것’에 김남훈과 황아일은 눈길이 끌린다.
2층에 전시된 〈관측된 오브제들_한남(Observed Objects_hannam)〉은 재료로 쓰이지 않을 법한 길 위에서 수집한 작은 사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 사물은 한남동을 포함한 여러 장소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시장에 옮겨진 사물은 오브제로 기능한다. 한남동 재개발 지구에 위치한 아쉬LAB high에서 작품이 공간과 어떻게 관계 맺어질 수 있을까? 작업은 버려지거나 잃어버린 누군가의 사물 그리고 미세한 파편들을 관찰하고 수집한 시간과 장소의 기록이며, 분류와 접촉의 복합적인 관계 맺음이 공간과 합의하는 듯하다. 3층 테라스에 설치된 〈모스_바다 v2.0(Morse code_ocean v2.0)〉는 한남동 언덕에서 건너편 멀리 있는 불빛 속 익명에 보내는 모스 신호이다. 김남훈이 쓴 시는 불빛이 되어 텔레스코픽 마스트에 의해 높게 올라가 깜박이는 한남동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황아일은 한남동에서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라는 문구를 발견하였다. 이 문구는 한남동 재개발 지구의 골목길에 위치한 것으로, 작가는 공간과 문구의 모순적 배치에 주목한다. 황아일의 컬러 투명 아크릴판을 사용한 〈의심 조각(Doubt sculpture)〉은, 쓰고 남은 자투리 조각들이 가진 우연한 형태의 만남으로서 무게중심의 작은 흐트러짐으로도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태세이며 새로운 형태의 쌓음을 예기한다. 그리고 〈재건축 V(Reconstruction V)〉와 〈검은 숲 II(Black forest II)〉의 작업에서는 라텍스 페인트와 시트지 같은 유동적인 재료를 사용해 공간과 조각의 경계를 지워가며 한남동의 습도와 공기, 무게를 응집시킨다.
결국 오브제는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흘러내릴 것이다. 지금도 부식되고 침체하여 소멸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작고, 작은’ 물건이라도 소중하게 다루어진다면, ‘중력을 견뎌’ 삶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 미세한 정도의 중력을 견딘다면, 그 물건은 쓸모 있는 삶을 택할 기회가 아닐까. 김남훈, 황아일이 발견하고 선택한 오브제 또한 그럴 것이다. 유한한 생일지라도 짧은 순간이나마 의미를 다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소중한 순간을 지속하여 남은 삶을 다할 수 있겠다.
글. 이아현
김남훈 KIM NAM HOON
에필로그: 추웠다. 늦여름 더위가 맹렬하게 사라지던 때 시작되었던 그곳에서 나의 어슬렁거림은 강도가 세질수록 오히려 추웠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을 바라보는, 한남동 재개발 지역을 누비고 다니다 보면, 70년대 영화 고교얄개 시리즈 무렵에 지어졌을 법한 오래된 흔적과 혼재된 8, 90년대의 다가구 연립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 시절 혜화, 명륜동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여기는 소위 달동네다.
달동네란 도시가 개발되면 거주지에서 밀려난 가난한 사람들이 산으로 모여들어 생기는데 이곳이 그러한 곳이었다. 미군 기지촌과 도깨비시장에서 생업을 잇는 근로자들이 달세를 내며 고단한 몸을 쉬던 곳. 오랫동안 재개발에 밀려나 방치된 넘쳐나는 쓰레기와 지릿한 냄새, 빗물이 새는 좁은 골목집들에 가난한 세입자들과 외국인들이 사는 곳. 피로한 그곳은 한강을 남향으로 바라보는 명당이었다. 수많은 세대가 거쳐 간 시간과 삶의 층이 켜켜이 쌓인 그곳은 현재 거대 자본주의가 모여든 탐욕에, 삶의 재생이 아닌 삭제를 기다리는 시한부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렇게 숨통 없는 빈부의 팽팽한 중력과 누군가가 사용했던 마스크가 길 위에 널브러진 시대, 전시 중에 벌어진 믿기 힘든 이태원 참사는 지금 심정 같은 역대급 한파로 깊은 겨울 속을 지나는 중이다.
작업이 던지는 질문은 어리석게도 희망을 기대했기에 전시가 끝난 후 무기력과 비참함에 큰 상처를 베인 것 마냥 혹독한 겨울을 보내는 2022년 마지막 밤도 그렇게 추웠다. 2022.12.31
황아일 HWANG AIL
김남훈 작가와 함께한 2인전 〈작고, 작은 + 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2022)는 곧 사라질 한남동 재개발 지역에서 아쉬LAB공간과 관계를 맺으며 탄생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그중 《재건축 V》는 2층 창문에 자주색 시트지를 붙이고 부분적으로 구멍을 낸 작업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재개발 지역과 한남동 부촌의 풍경은 시트지를 통해 붉게 물들어 보인다. 그 붉은 빛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은유하며, 마치 공간 속 공기를 응집시키듯 긴장감을 자아낸다.
《의심조각》은 쓰고 남은 자투리 아크릴 조각들을 우연히 만나게 하여 구성한 작품이다. 형태가 불완전한 이 조각들은 작은 무게중심의 흐트러짐만으로도 쉽게 무너질 듯 위태롭다. 그러나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시 세워지며, 균형과 불안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순간들을 암시한다.
한편, 《검은 숲 II》는 검은 유리, 깨진 유리, 유리에 칠해졌다가 벗겨진 라텍스 페인트, 그리고 유리 앞에 부어져 젖어 있는 라텍스 웅덩이 등 여러 유사한 요소들이 반복적으로 겹쳐지며 완성되었다. 이 과정 속에서 공간과 조각, 그리고 물질의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끊임없는 변화를 보여준다.
<안녕, 한남>(2022) 전시에서 선보인 《경계의 공간》은 두 개의 작은 공간을 나누는 벽의 바닥 틈 사이로 푸른색 물감을 부어 표현한 작품이다. 벽 양쪽 공간으로 스며든 이 푸른 흔적은 마치 유동적인 강줄기처럼 보인다. 건축물의 틈, 즉 견고하지 않은 공간을 전제로 두 개의 영역을 하나로 잇는 이 작업은 변화가 일어나는 곳으로서 경계에 있는 공간과 단단해 보이는 것을 거스르는 유동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들은 모두 곧 사라질 공간에서 태어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를 담아낸다. 재개발 지역이라는 한시적 공간 속에서, 사물과 관계, 시간은 유동적으로 흘러가고 사라지며, 그 흔적들은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