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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
이기연 개인전
2020.10.22~2020.11.09
(12:00~19:00)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마을길 55-8 
참여작가: 이기연

Opening 2020. 10. 23 (금요일)  pm 6:00



로고스와 파토스
LOGOS&PATHOS


쓴 맛과 단 맛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지 못했던 시절, 카카오 열매는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마시던 쓰디쓴 기호식품이었다. 
게다가 이 쓴 음료와 함께 겹들여 먹은 향신료가 고추였다고 한다. 
당시 카카오 음료의 효능이 심신의 안정감을 주는 것인데, 그 약효에 비해 대단히 자극적인 조합이다. 
또한 이 음료는 대중화되지 못했는데, 쓴 맛과 동시에 매운맛을 견딜만한 단단한 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러나 대항해시대(실상은 대정복의 시대) 전혀 새롭지 않은 신대륙을 처음 발견한 유럽인들은 
금은보화와 함께 카카오 열매도 그들의 고향으로 실어 날랐다. 
쓰디쓴 열매의 씨앗까지 잊지 않고 가져간 그들의 혜안(?)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없다. 
역시나 욕심의 배에 실려 유럽으로 간 카카오는 사람들의 인기를 받지 못했다.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는 신비로운 씨앗으로 소문이 났지만, 그 맛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도 지혜로운 유럽인들은 카카오 씨앗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기사 길고 긴 바다를 건너 수많은 역경을 뚫고 가져온 전리품이 아니던가? 
카카오 씨앗에서 기름을 짜내고 다시 설탕과 우유를 넣어 초콜릿을 만들었다. 
가상한 노력에 신도 감복한 것인지, 설탕의 과한 단 맛은 상쾌한 달콤함으로, 
우유의 부담스러운 느끼함은 풍미가 넘치는 부드러움으로 변했다. 그렇게 수세기가 흘러 쓰디쓴 역사의 과정이 흐릿해지듯, 
초콜릿은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달콤함의 상징이 되었다.


물과 불

(흙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자, 모든 것의 결정체이다) 

 인류가 신비로운 레시피로 만든 것이 초콜릿뿐만은 아니다. 
흔히 물과 불의 관계라는 말처럼 물과 불은 함께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함께 존재할 수 없다고, 서로 협력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흙은 물이 없이는 서로 뭉쳐지지 않는다. 
흩날리는 티끌이 물을 만나 서로를 함께 붙들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물을 품은 흙은 그 형태가 지속되기 힘들다. 물렁한 질흙이 불을 만나 구워지면 비로소 단단한 모양을 굳힐 수 있다.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세세한 과정은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탄생의 맥락은 이러하다. 
반목할 수밖에 없는 물성이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 강력한 유대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직도 수만 년 전 신석기 토기가 생생히 발굴되는 이유가 이러한 것은 아닐까?
 


로고스(LOGOS)와 파토스(PATHOS)
 
 인간이라는 종족은 반듯한 선에 집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연에서 존재할 수 없는 직선과 그 선을 붙여 만든 도형들이 인간이 만든 도시를 빼곡히 채운다. 
그 직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규칙한 점을 서로 붙여 놓은 그럴듯한 사슬의 연속이다. 
인간의 이상과는 달리 네모 반듯한 구조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불규칙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결국 직선을 좋아하는 인간도 자연의 불규칙한 조각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는 직선을 계속해서 그어대고 있는 걸까?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쭉 뻗은 직선처럼 우리는 모든 것을 예측하고 싶어 한다. 
보이는 것으로 구분되는 겉과 속의 경계는 의미가 없다.
흙과 물 그리고 불은 이기연의 작업을 이루는 근간이다. 
사실, 대부분의 도예가들이 다루는 요소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다른 것들과 조금 더 차이가 있다면 , 
물과 불의 속성이 완성된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는 것이다. 
함께 존재할 수도 서로 잡을 수도 없는 물과 불의 마티에르가 서로 엉키고 설켜있다.
겉 면으로 생각했던 흙의 선을 따라가 보면 어는 덧 속면으로 변해있음을 느낄 수 있다. 
상당한 부피의 덩어리들은 대부분이 구멍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것도 없는 구멍(虛)이 구성의 대들보인 것이다.
작품의 구성을 미리 생각하고 작업을 시작하지만, 작업의 과정 중에 작품은 스스로 성장해 나간다. 
불규칙한 분열과 성장이지만, 그것은 분명한 하나의 살점이다.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존재들… 은 없다.
우리가 사는 삶은 이성과 일탈의 혼합이다. 매일 지켜야 하는 것이 있는 반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당혹스러운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로봇의 일탈은 에러(ERROR)이지만 인간의 일탈은 변화이다. 
쓴 맛과 단 맛, 물과 불. 
서로의 존재가 무엇인지 보다, 
어떻게 하면 함께 할 수 있을까? 이기연의 작품이 묻는 물음이다. 

글 김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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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에 잠기다> black mountain, 가변설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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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함의 무게> black mountain, engobe, 가변설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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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에 잠기다> black mountain, 가변설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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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 black mountain, engobe, 1000×1100×350, 2020

 

 

 

 

 

공허함에 대하여

 

공허함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꿈이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느끼는 허무함 

그리고 본인은 물론 타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에 대한 '실의' 등 

다양한 상실의 감정들은 

언제나 우리의 내면에 '공허함'이라는 감정으로 다가온다.

 

자유로운 곡선, 안과 밖이 연결된 면들 그리고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 채워진 듯 하지만 

사이사이 비어있는 공간들, 

그것은 선과 면으로 메우려했지만 메울 수 없는 것으로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내 안의 공허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의 작업은 유기적 구조물을 형성해가며 

형태를 정리 또는 확장함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구조에 대한 실험이다.

그리고 그것은 빈 공간에 대한 허전함을 채우려는 집착에서부터 시작하여 

큰 틀을 정하고 빈 공간을 유기적인 구조로 채우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전체적인 실루엣을 구상하고, 

그 안의 구조는 연결과 분리를 반복하여 만들기 때문에 

작업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결과물을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본인의 작업은 계획적이면서도 즉흥적인 작업으로 

작업 과정중의 심리 상태는 그대로 작품에 반영되어 많은 영향을 준다. 

 

쌓아 올린 흙 줄의 겹침과 그것들을 단단히 붙여주기 위해 눌러주고 

연결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흙의 표정은 

결국 작품 제작시의 본인의 심리를 면과 선의 흐름으로 표출해내는 

시간과 감정의‘기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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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허, 이기연 개인전 2020.10.22-11.09  갤러리아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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