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aHsh 2020_6th Carnival
알타미라
'날리는 돌'의 딸, '흔들리는 손'
1, 사냥의 이야기
'날리는 돌'은 그의 이름처럼 사냥에 나설 때 누구보다 나르고 용감했다.
지난달, 들소 떼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날리는 돌'의 활약 덕분에 부족원들은 반년은 족히 넘게 먹을 수 있는 들소를 잡았다.
그러나 평소에 많은 준비와 노력에도 사냥이 매번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날리는 돌'은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사냥에 온 마음과 정성, 그리고 집중을 다했지만,
찰나의 망설임과 잘못된 판단으로 도리어 사냥감의 먹잇감으로 둔갑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렇듯 부족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현명하고, 냉철한 '날리는 돌'같은 사냥꾼도 사냥의 매 순간이 도전이고 시험이었다.
그래서 맨손으로 사냥감을 때려잡던 전설적인 사냥꾼들도 부족의 마을로 돌아와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
1-1. 작업의 이야기
작가의 작업이 직업이 될 때, 반복되는 작업이 시간과 함께 버무려져 삶의 감칠맛도 함께 사라져 간다.
아니 그것은 정확히 이야기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 거대한 시간의 일상 속에 녹아가는 것일지 모른다.
번득이는 작상(作像)을 한 번이 아닌 매번 쏟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결코 녹아들지도 사라지지도 못한다.
오히려 초승달같이 날카로운 반비례 그래프를 그리며 점점 시작점에서 멀어져 간다.
전업작가는 작업을 하지만, 모두가 사는 생존의 법칙을 벗어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이 먹고 자고 사는 행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자유로운 상상이 일상이라는 덫에 걸릴 때, 안간힘이 오히려 마음을 깊숙이 패고 들어오기도 한다.
2. 시작의 기원
'흔들리는 손'은 '날리는 돌'의 딸이다. 아버지가 부족 최고의 사냥꾼이지만,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사냥에 재능이 없었다.
재능이 전무했다기 보다는 다른 것이 사냥보다 더 좋았다. 동굴에서 염료로 그리는 그림은 그녀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다.
부족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역할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너른 상상은 봄날에 피어오르는 민들레처럼 어느덧 동굴벽을 빼곡히 채워나갔다.
뾰족한 돌멩이의 모서리를 사냥이 아닌 벽화의 도구로 사용한 것도 그녀가 처음이었다.
식량을 찾아 먹고 다시 그 식량이 떨어지면 또다시 찾아 나서는 반복되는 생존의 패턴 속에서도 그녀의 작업은 끝이 없었다.
겨울이 혹독할수록 그녀의 그림을 바라보는 부족원들이 많아졌다.
누군가는 그녀의 벽화를 통해 잊고 있던 추억을 꺼내 올 수 있었고, 기하학적인 문양 속에서 자신만의 소원을 풀어놓을 수도 있었다.
그곳에는 기쁨이 있었다. 배고픔도, 추위도, 이겨낼 수 있는
민들레 씨앗 같은 손자국들이 동굴 속을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2-1. 아쉬 카니발의 기원
반복되는 당연한 일상은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간다.
시간의 속도는 평소에 산들바람처럼 유하지만, 뒤돌아보는 순간에 태풍처럼 지나쳐있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이렇게 멀리 날아온 걸까? 시작의 오롯한 감정이 아직도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있을까?
어릴 적 진흙을 만지며 허드레 종이 위에 마음껏 그리던 창작의 순수한 낙을 잊지 않은 것일까?
구석기시대 동굴벽화가 잘 보존된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는 그리거나, 만드는 창조의 행위 본연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시대의 예술가들이 오히려 머나먼 과거로부터 온 동굴벽화를 보고 충격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이었다.
만약에 우리가 여러 무거운 짐을 잠시라도 벗어던지고, 지금의 감정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알타미라 동굴의 작품은 예술의 시작점인 동시에 끝점일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아쉬 카니발에 대하여
아쉬의 카니발은 작가를 위한 작은 축제로 출발했다. 찾는 이도 떠나는 이도 드물어지는 무더운 여름의 축제이다.
전시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관람객을 비롯한 기타 여러 시선의 부담감을 줄여 오로지 작업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본명을 감추고 닉네임을 사용하기, 다른 장르의 작업을 시도하기,
전시 오프닝을 피날레로 대체하고 영상으로 작품의 내용을 밝히기 그리고 위 모든 형식 또한 자유롭기) .
원래 카니발은 가톨릭 국가의 사육제 즉, 사순절 기간(고기를 먹기 금지), 전에 마음껏 고기를 먹는 기간이다(어원인 라틴어는 "고기여, 안녕" 이란 뜻).
전업작가가 마치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순절 같은 일상의 기간을 만났다면,
갤러리 아쉬의 카니발이 마음껏 고기를 먹는 사육제처럼 다른 사고,
딴짓들을 받아들여 보는 기간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무겁고 거대한 담론을 주제로 하는 것이 아닌, 그저 현재의 기분.
그것에 몰입하여 막혀있는 각자의 사정에 작은 파동을 일으킬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글 김승환
전시기간 : 2020.09.11(금)-09.27(일)
전시엔딩 : 오프닝 행사는 없고, 9월 27일(일) 오후6시~9시 엔딩행사가 있습니다.
전시장소 : 갤러리아쉬 헤이리
전시장르 : 무제한
참여인원 : 약 1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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