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 최인호 2인전
2013.09.24~10.20
(am11:00-pm6:00/월요일 휴관)
갤러리아쉬 헤이리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마을길 55-8
(헤이리예술인마을 1652-191)
참여작가_윤석남, 최인호
- 윤석남, 그림 길 가는 날 -
기억하기에…살아난다.
결국 무덤은 살아있는 자의 것이다.
사라진 것을 기억하려는 주변의 의지가 흙무더기 속에 염원으로 모여 있다.
아들을 가둔 영조의 후회도, 아버지를 잃은 정조의 슬픔도 사도세자의 능 앞을 서성인다.
윤석남의 작업실이 이 융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도 그저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의 작업실을 지나는 곳곳에 나무가 있다.
무엇을 해도 어느 것 하나에게 해코지 않는 나무의 삶은 여기까지도 이어진다.
그리 보면 평화는 요란스럽지 않게 살아가는 나무와 닮았다.
진부한 나무이지만, 변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작업실에 다다르자, 죽은 고목 하나가 서 있다.
그가 좋아했기에 옮겨 심은 나무였지만,
같은 자리를 사명처럼 지키고 사는 나무에게 낯선 곳의 물갈이는 힘겨웠을 것이다.
하기야, 그 누가 타향의 삶을 편안히 받아들이겠는가?
그는 자신의 무리한 욕심이 나무를 죽였다 말하며 마음 아파했다.
작업실엔 몇 십 년을 작가와 함께했을 작은 앉은뱅이 의자가 있다.
물감때가 묻고 묻어서 조화로울 정도로 닳아 있다.
옆으로는 생을 마쳐 지붕이 되고, 막이의 쓰임을 다한 너와들이 있다.
비바람에 맞고 맞아야 나타나는 무늬가 올라있다.
정말 평생에 한 번 만날까 모를 최고의 나무라, 그가 이야기했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그의 작품과정을 따라본다.
기다리다보면 나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일생을 맞고, 듣고, 지키기만 한 나무도 마지막 쓰임을 할 때는 스스로 입을 여는가보다.
그가 붓을 드는 순간도 그런 때가 아닐까? 나무 스스로 실루엣을 띠게 되는 바로 그때,
색때 묻은 의자에 앉아 옹이가 이야기를 풀면 그는 입을 그리고, 결이 마음을 누이면 그는 가슴을 그린다.
윤석남이 바라보다 불러가면 서서히 그 상(像)들이 올라온다.
반은 세월이 그리고, 반은 자신이 그린다는 ‘주름의 원리’가 선을 이어간다.
나무와 다생지연(多生之緣)으로 붓을 주고받는 시간이다.
아직 자신을 보여주지 않은 나무들은 도도한 아씨처럼 다른 쪽에 모였다.
보여주지 않음은 저항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에도 위해 없는 삶을 살았던 당당한 자존심일 것이다.
언젠가는 저 너와에도 그릴 수 있겠지, 여유롭게 이야기하는 그다.
윤석남이 새침한 너와의 자상(自相)을 조용히 기다린다.
지하, 버려진 개들의 조각 사이로 뭉쳐진 사람의 무리가 보인다.
나무에 그려진 얼굴들이 빼꼼히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버려진 현실의 사람들은 작은 배에 몸을 실었다. 떠나온 곳을 간절히 바라보지만, 몸은 반대로 헤맨다.
살고 싶어 떠났지만, 향하는 곳에 희망이 있을지는 더욱 알 수 없다.
‘보트 피플’, 버려진 사람들, 그가 나무에 그려간 땅 없는 자들의 얼굴이다.
음영의 농담이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눈가에 번져 간다.
만다라화(曼茶羅華)는 다시 피어난다.
그래도 살아있다.
그들을 기억하는 이가 있어, 다시 살아난다.
버려진 삶도 기억하기에 살아나고, 찾아가기에 재생한다. 연꽃은 망향의 한 가운데서 다시 태어난다.
떠나는 길, 내몰려질 사람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지나는 가지 위에 걸려있다.
글 김승환
- 최인호, 그림 길 가는 날 -
가난하기에 깊은…그대의 위로에 찔린다.
돌보지 않은 들판은 거칠다.
거친 표면은 깎이고, 날리는 먼지는 들판의 거름이 된다.
엉성히 자라는 높이는 규칙이 없어 자유로운 티끌이 얹힐 수 있다.
사실, 척박한 것은 우리네 개인사일 뿐, 자연은 관대하다.
오로지 자신으로 피고, 자체로 지는 꽃과 풀만이 그 이치를 알고 있다.
가이드라인 없는 흙길을 걷는다.
논과 밭의 빛깔이 경계를 만들지만, 사람의 발길이 없었다면 이 길도 여러 잡풀이 무성 했을 것이다.
지킬 것이 없기에 라인도 필요치 않다. 그렇기에 누구나 오고간다.
풀들이 누워있는 방향을 따라 그의 작업실로 향한다.
최인호에게 가는 길 풍경은 발들의 흔적만 있을 뿐, 분명한 담을 세워 놓지 않아 좋다.
길의 여지는 틈을 만들고, 공(空)으로 비워질 캔버스를 준비한다.
막힘이 없기에 생각할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모습이다.
저기 서먹한 들판 위에 정신 나간 여자가 있다.
옛말로, 머리에 벌레 먹은 듯한 여자는 참 소박하기도 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체와 돌아기를 업은 여자.
돌봄이 필요할 것 같은 여자는 스스로를 지탱하며, 모성의 자취로 돌멩이를 들쳐지었다.
아름다움 한 가닥을 잡고 싶은 마음에 들꽃 하나를 꺾어 머리에 꽂았다.
얽히게 바른 입술이 설키게 피어난 진달래 같다.
마음을 풀어 젖힌다.
그녀가 무슨 길을 지나오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중요치 않다.
여자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얇은 포대기와 꽃. 원하는 것도 없다.
노란 들판에 연기 같은 얼굴로 아지랑이 미소를 짓는다.
여자를 따라가며 솔솔… 스스럼의 봇짐도 열린다.
그 여자, 위로를 건넨다.
어울리지 않는 온갖 이기(利器)를 무겁게 걸친 나에게 두꺼운 위로를 천천히 들이민다.
순간, 뚜렷한 이목구비도 없는 그림과 나 사이에 물이 고이고, 아슬거리며 가물거린다.
내가 울고, 그림도 울고. 나지막이 "괜찮아…괜찮아…"
달램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힘이 아니다. 한결 같은 선에서 서로를 붙잡아 안음이다.
여자는 줄곧 같은 박자로 눈을 맞댄다.
그러곤 놓아준다.
놓을 수 있기에 놓는 것이다.
흐릿하기에 또렷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화로(畵路)의 숯은 전부 타버린다 해도 온기의 기억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제는 불붙지 않을 연탄재, 다시 굳힐 수 없는 시멘트,
모두를 소진한 어제의 것으로 그려진 오늘의 그녀가 나를 보며 괜찮단다.
채워갈 욕심으로 가득한 것은 본래 아무것도 없는 것이기에...
나도 여자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이다.
되돌아가는 길, 나도 길 위의 들꽃 하나를 머리에 놓아본다.
글 김승환
최인호_빨강머리 꿈꾸는 식물_objet_mixed media_2013
최인호_드로잉_mixed media_2013
최인호_꽃을 든 남자_mixed media_2013
윤석남, 최인호 2인전 지하 1층
윤석남, 최인호 2인전 지하 1층
윤석남, 최인호 2인전 2층
윤석남, 최인호 2인전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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