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yche_web1000_1__082109.jpg
 

 

<開館展> 프시케, 감각의 온도

2013.4.27~5.19

갤러리아쉬 헤이리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마을길 55-8 

(헤이리예술인마을 1652-191)

참여작가_조나라, 장선아

 

 

 

 

 

1.프시케의 의문.

눈이 부신 만큼 이유와 의문도 함께 아지랑이 처럼 증발 되고 있을 때.

에로스는 언니들과의 만남을 허락했다. 아니 나는 그때 그의 이름을 몰랐으니, 그저 그 남자의 허락이라 해두자.

그리운 그녀들과의 해후는 황금궁전의 생활이 주지못하는 기쁨을 선사했다. 

하지만 기쁨의 반대 편에 자리 할지 모를 그들의 시기와 근심은 대화 속 날카로운 바늘이 되었고, 

한 땀의 단어들은 어느덧 거부할 수 없는 의문으로 내 마음을 박음질 하였다.

분명 그것은 가족들의 시샘 어린 부러움이었을 테지만, 혹한의 겨울이 진 푸른 여름을 만들듯 나의 결심을 굳혀주었다.

그 남자 에로스는 늘 이야기 하였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 의문을 갖지 말라. 그저 믿고 사랑하라"

일방적인 그의 믿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그의 사랑은 진심 인 것 인가? 당연한 것에 이유를 붙인다면, 믿음이 아니라 변명일 뿐.

행여 나의 호기심이 사랑을 날려 보내더라도, 오늘 밤 촛불을 들어 그 남자의 모습을 보리라.

 

1-1. 조나라의 의문.

현실의 미끈하고 말끔한... 척을 하는 시스템은 생활의 효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우리의 상상력을 얽맨다. 

사방이 막힌 견고한 액자 속에서 상상과 의문의 산물은 페기물 처럼 시스템의 뒷 편에 차곡히 쌓여간다.

조나라의 작업은 사회의 통념, 그에 준하는 물음이 사라져 버린 당연지사의 답에 "왜 일까?" 라는 이음을 덧대어간다.

섬유라는 매체로 그림을 그리는 그녀의 작품(바늘과 실을 이용한 한 땀의 표현을 그녀는 붓터치라 이야기한다.)은 

나란하여 고른 면(무의식속)이 앞이 되는 현실의 이유를 되 묻는다.

뒷면의 자국은 정형의 앞을 완성하기 위한 비정형의 흔적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지는 산고(産苦)의 상흔(傷痕)과도 같다.

이런 일방적인 앞(시스템)을 부정하여 내어 놓은 그녀의 작품은 앞과 뒤라는 이분법을 분열 시켜, 다양한 물음을 생산해 간다.

작품의 실들은 '물을 찾아 헤매는 뿌리, 빛을 찾아 오르는 줄기'가 되어 뻗어나간다. 

자연의 뿌리와 줄기가 그러하듯 그녀의 작품도 경계를 뚫고 자라난다.

우리가 만든 세상의 틀과 고정관념 역시 아스라이 금이 가듯 허물어짐을 느낀다.

차별이 역차별을 낳듯 뒷면의 이야기가 또 다른 뒷면을 낳을 수도…

 

하지만 의식과 감성의 또 다른 구별이 아닌, 모든 감각의 소통을 꿰매어가는 그녀의 작업은 '한 올의 바름'을 지향할 것 이다.

 

글 김승환

 

 

 

 

 df28a3d7df7e7c1413183a62c451bd9f_082130.jpg 

조나라_animal_thread on linen_62x90cm_2012 



 

9b0b896a5b97f151df5d6a4cb046882d_082139.jpg
조나라_animal_thread on linen_45.5x37.8cm_2012



d10a1257c1f4746577936d5ab40e8f78_082148.jpg
조나라_animal_thread on linen_24.2x33cm_2012


 

_MG_1696__082319.jpg


_MG_1708__082319.jpg
 

 

 

2.프시케의 상태.

나는 없는 것을 찾아간다.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아간다. 

헤라의 조건은 장소만 바뀔 뿐 의미가 변하지 않았다.

에로스가 나의 호기심으로 날아간 후 그를 찾기위해 헤라를 찾아갔다. 

비록 에로스의 변명 같은 믿음을 저버렸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내 손으로 그를 되찾으면 그 뿐. 

에로스와 황금궁전을 향한 욕망이 아닌, 나는 나의 사랑을 스스로 찾는 태양이 될 것이다.

속세의 말에 움직이지 않는 태양 처럼, 순리의 중심이 되어 삶을 개척하리라.

지하 망령의 세계 페르세포네가 상자 하나를 건네었다. 열기 위한 상자가 아닌 닫힘을 증명할 상자였다.

상자에는 나의 행로를 다시 호기심으로 회기시킬 얄궂은 미(美)가 들어 있었다.

순간일까 아니면, 가치의 경중 그 기준을 뒤엎어 놓은 것일까? 나는 색의 갈라짐을 느꼈다. 

비록 그 속에 어떤 아름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들은 이미 머리 속에서 감응(感應)하여 폭발하였다. 

상자의 뚜껑이 열리지 않았을 뿐, 상자 속 치열한 아름다움은 이미 상상속에서 터져 나아갔다.

다시 또 다시. 

시련을 맞는다 하여도, 설령 영원한 잠에 빠진다 하여도 나는 상자를 열어 아름다움의 꿈을 꿀 것이다. 

이것은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 의지의 망각이 아닌, 잊혀져버린 '나의 사랑'을 찾는 지각이다.

 

2-2. 장선아의 상태.

지난 바람의 울음과 사냥의 시선을 삼켜 삭히듯 새벽 숲의 찰나는 고요하다.

장선아의 작업 역시 찰나의 잠잠함을 오리고,붙이고,그리며, 묵묵히 발효 시킨다.  

발효(작가의 손길)된 색의 편린(片鱗)은 모이고 부스러지는 물질로 시작하여 알 수 없는 무엇으로 흘러간다. 

색(色)이라 함은 빛을 흡수 또는 반사하여 보여지는 무엇이다.일반적으로 빛을 통한 색은 이렇게 갈무리 지을 수 있다. 

그러나 빛이 그녀를 투영하여 쏟아내는 것을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까…

태풍 전야의 고요한 과정은 곧바로 색의 폭발과 화마로 이어져 공간을 쓸고 지난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그녀를 이런 폭발로 이끄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공간은 어느덧 그녀의 색으로 여물어 갈 뿐. 

마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주문을 걸어 조각들 스스로의 혼으로 움직이듯(사실 과정은 끝없는 인내와 숙련된 감각의 연속이다.)

공간의 구석구석에서 재생된다. 상처가 아물고 다시 살 위에 살이 붙어 나가듯 그녀의 '마술-미술'은 그렇게 피어나는 살과 더불어 간다. 

물질계의 고체,액체,기체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색이며, 조각이며, 오브제라면, 그녀를 투과한 물질은 제 4의 비물질 곧 '플라스마(PLASMA) 상태'를 보여준다.

이 비물질의 플라스마는 현실공간의 숨과 빛을 울리며 흔들어, 고요한 새벽의 극광(極光)… 오로라의 찰나로 돌려 놓는다.

 

글 김승환

 

 

 

 

 

b887417338034a1c583392776e8fdd91_082225.jpg
장선아_mixed media_가변설치3_2013



f29a119811719226e4d1720e5b73c845_082231.jpg
장선아_mixed media_가변설치2_2013



58f2e0959c50e6d5946fb53b84c8e4eb_082236.jpg
장선아_mixed media_가변설치_2013


 

_MG_4516__082307.jpg


_MG_4478__082308.jpg
 

 

이미지 확대보기<開館展>프시케 감각의 온도 - 조나라, 장선아_2013.4.27-2013.5.19

<開館展>프시케 감각의 온도 - 조나라, 장선아_2013.4.27-2013.5.19
  • <開館展>프시케 감각의 온도 - 조나라, 장선아_2013.4.27-2013.5.19
닫기

비밀번호 인증

글 작성시 설정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닫기

장바구니 담기

상품이 장바구니에 담겼습니다.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

찜 리스트 담기

상품이 찜 리스트에 담겼습니다.
바로 확인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