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보면서 ‘저거 곰 같다, 그렇지?’ 하는 사실의 세계에 익숙해진 우리의 지각을 두고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생존본능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이 지각에 찬물을 냅다 붓는 추상의 세계에 도예가 들어 온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도예면 그릇을 떠올리는 선입견, 먹고 마시는 행위의 그 실용적 기원, 그리고 청자, 백자하며 그윽한 멋으로 내려앉은
전통의 굴레가 현대 미술과의 관계를 좀 복잡하게 만든 것 같다. 다행일 수도 있다. 긴장관계에서 새로운 흥분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상의 매력은, 마이클 옥샷의 말을 빌리자면,
실용적(practical)세계를 이탈하여, 아무런 목적 이 즐거움 그 자체만이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시적(poetic)세계에 몰입하게 해주는 것이다.
한희선의 이번 전시회를 보러 들어가 정면에 걸린 두 작품을 놓고 오래 서 있었다.
네장의 패널을 붙여 열개가 넘는 각을 낸 금속 같은 작품 ‘B.WORK’은 강압적이었다.
시점보다 높이 걸어,올려보는 데서 오는 압도감, 양손을 벌려야 할 정도의 크기, 검은 바탕 위에 수직으로 거칠게 가한 흰부러쉬 자국,
그리고 그 격정의 평면에 펼쳐진 도형과 직선의 혼란. 첫 째 느낀 충동은 도피였다.
한편 작품 ’W.WORK’은 나를 끌어 당겼다. 공간을 비어놓았다. 그 속에 구성된 기하학적 도형들이란 직선의 끝이 서로 만나는 입체였다.
입체의 여섯면이 이루는 부피도 통상적이라 생각할 만하면, 그 위에 실크스크린화상을 붙여 그 부피의 질감을 삐딱하게 틀어내,
고정관념을 가지고 노는 재치와 여유가 느껴졌다. 게다가 작품 밖으로, 노출콘크리트벽에, 테잎으로 경계선을 연장해, 도형들이 질감이 다른 두개의 다른 공간을 둥둥 넘나드는 효과를 냈다.
무엇이 평면이고 무엇이 입체인지 질문을 받는 듯 했다. 도피했던 작품 ‘B.WORK’으로 돌아가 평면과 입체의 감각을 비교할 수있는 능력이 생겼다.
처음 보고 너무 꽉 차있다고 생각한 공간이 이제 정화된 눈으로 다시 따라가 보니 더 열려있는 듯 했다. 두 작품은 함께 있어 좋다.
확정해 보기 보단 열어놓고, 계속되는 Play 그리고 개체간의 interplay 를 가능케 함이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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